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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구원인가 재앙인가 운영자 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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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구원인가 재앙인가

 

(<듀얼 브레인: AI 시대의 실용적 생존 가이드>, 이선 몰릭, 신동숙 옮김, 상상스퀘어, 2025)

 

공상과학 영화에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이야기를 종종 보았는데, 영화에서 로봇에 맞서 필사적인 저항을 하는 인간의 눈물겨운 투쟁 이야기를 마냥 웃어넘기기가 점점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낱말이 일상적으로 별 부담 없이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둑 천재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이세돌 기사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세돌 9단(인간)의 압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세돌 9단이 어쩌다 딱 한 판을 이겼을 뿐 1:4로 처참하게 완패하고 말았다. (그만큼 인공지능의 성장 속도가 빠르고 그것이 인간의 삶에 파고드는 속도 또한 예상 밖으로 아주 빠르다는 이야기다.) 그나마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1승을 거둔 처음이자 마지막 기사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는 다소 뜬금없는 사실이 몹시 곤혹스럽다. 요즘 세계적인 바둑대회 실황 중계에서 인공지능이 예상하는 승률 예상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해설자들도 어려운 수읽기 대목에서는 어김없이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블루 스팟’을 참고하여 해설한다. 실제 인간 대국자들의 심리적인 요소가 철저히 배제된 채 오직 인공지능 특유의 기계적인 연산능력으로만 승리의 길을 찾아가는 바람에 인공지능이 등장한 뒤 바둑의 참맛이 많이 감소한 것도 사실이다. 

 

연말연시 여러 행사(예컨대 성탄절 혹은 송구영신 행사)와 관련하여 인공지능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도 AI 기능이 탑재된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으로 예전의 전문가 뺨치는 이미지나 영상 결과물을 만들어 페이스북같은 SNS에 그럴싸하게 올려놓는 것을 자주 보았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 크로키’도 AI가 단 몇 분만에 뚝딱 멋지게 만들어 낸다. 이처럼 사진과 영상을 생성하는 AI도구는, 완벽히 그럴 듯해 보이는 가짜 사진 이미지를 활용하여 사진 속 인물이 실제로 대화하는 것처럼 꾸민 ‘딥페이크’ 영상으로 ‘디지털 사기’를 치기도 한다. 그동안 이 딥페이크 영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유명인들,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심각한 피해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삶, 그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뜻밖에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흉기(凶器)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다. 이해하기 쉽게 사진에 빗대어 말해보자. 사진 계(界)에 “사진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맹신(盲信)에 사로잡힌 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하지만, 사진만큼 거짓말을 잘하는 매체도 사실은 드물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AI에 대해서도, 순진한 사람들은 그것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천만에, AI 역시 사람들만큼이나 거짓말을 잘하며, 아주 능숙하게 가짜뉴스를 만들어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기도 한다. 이게 현실이다. 

 

시험삼아 챗 GPT에 어떤 성경 본문을 입력하고 그 본문을 기반으로 설교문을 작성해 달라고 해 보라. 채 1분도 안되어 정말 그럴 듯한 설교문을 뚝딱 만들어 내놓고는 그것의 요약문을 만들어 주겠노라 친절하게 제안하기까지 한다. 아울러 그 내용을 기반으로 주일 강단에서 선포할 세부 설교문도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해 드려도 되겠느냐고 또 살갑게 제안한다. 요즘 우리나라 법조계의 부패와 타락상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AI 판·검사의 도움을 받자고 난리인데, 진리인 성경말씀을 제멋대로 떡 주무르듯하며 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보조도구(양념)로 성경을 전락시키는 얼치기 목사들을 보며 많은 신자들이 그냥 AI 목사를 세우자고 하는 날이 코앞인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목사들에게 미리 경고하건대, 챗 GPT같은 AI를 교인들도 다 이용할 줄 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행여 그런 AI를 활용하여 설교문을 만들어 강단에 설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라. 그것은 명백히 AI 설교 표절행위다. AI 설교 표절도 표절은 표절이고, 그것은 아주 낯 뜨거운 도적질이다.) 

 

얼마 전 내가 섬기는 한국기독사진가협회(KCPA) 정기 모임에서 토론시간에 AI로 만든 사진 이야기가 나와 한동안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오랜 논의 끝에, 디지털 아트로 넘어가는 과정에 일정 부분 AI를 (극히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겠으나 가능한 한 AI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더더군다나 우리 협회가 추구하는 ‘기독 사진’ 영역에서는 더더욱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는 데 모든 회원들이 뜻을 같이했다. 이런 대화 속에서도 AI가 이미 인간의 삶, 그 깊은 곳에 스며들었고 그 흐름을 되돌리기는 아예 어려운 상황이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상의 여러 영역에서도 비록 초보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AI기반의 이기(利器)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덩달아서 AI가 인간의 노동시장을 잠식하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이 AI가 발달할수록 차츰 AI에 대한 인간의 공포감도 무한히 커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내가 늦깎이로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김세윤 교수님께서 “인간이 하는 모든 일, 그 결과물에는 명암(明暗)이 공존한다. 그것들이 생명에 도움을 줄 때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죽음을 이끌어오는 부작용도 항시 뒤따른다. 제약회사의 약통(藥桶)에 쓰여진 부작용 경고를 보라. 그것이 바로 피조물인 사람의 한계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만 부작용이 전혀 없이 인간에게 오직 생명만을 가져 온다”고 하셨다. 그런 점에서 피조물인 인간이 만들어낸 AI 역시 인간에게 생명과 멸망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는 양날의 검(劍)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AI의 부작용으로 어느 날 인류에게 멸망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언젠가 초인공지능(ASI, Artificial Super Intelligence)이 발명되는 순간 인간은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책 54 쪽). AI 분야에서 특이점은 초인공지능이 예상치 못한 동기를 품고 나타나는 갑작스런(예수님의 표현을 빌면 한밤중 도둑처럼) 시점(54 쪽)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초인공지능은 종교와 신앙 영역에서 말하는 하나님(神)과 별 차이 없는 전능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그 때 가서 인간이 그 초인공지능에 저항하려 해도 그것은 끝내 불가능하게 될 것이고 그 순간이 바로 성경이 예고한 인류 멸먕의 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AI와 관련한 매우 불안한 종말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엘리에이저 유드코프스키(Elieger Yudkowsky)는 AI로 인한 끔찍한 미래를 깊이 우려한 나머지 “AI 개발을 전면 중단할 것”을 주장했다(57 쪽). 좌우지간 현재 AI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부정적으로 보는 양 극단의 시각은 지구와 안드로메다만큼이나 거리가 멀다. 문제는, 이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시시각각 인간의 삶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현실이 어떻든 AI로 인해 인류가 멸종할 위험은 분명히 실재(實在)하는 것이다(58 쪽). 

 

저자는, AI로 인해 야기되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들을 세밀하게 지적한다. 첫째, AI가 학습자료로 사용하는 데이터에 대한 저작권 침해 문제, 둘째, AI가 학습하는 자료의 편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명적인 ‘편향성’, 다시 말해서 AI가 주로 학습하는 자료가 미국 편향, 영어권 편향, 남성 편향 자료인 탓에 나타나는 여성 차별, 비-영어권 차별의 심화 등으로 세상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조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상호작용에도 AI가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AI의 편향된 학습자료로 인한 편향성 때문에 인간사회의 편향(고정관념)을 AI가 더 강화시키고 고착시킬 심각한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AI 개발을 주도하는 이들이 AI의 이런 편향을 그저 애교로 받아들이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매우 안이한)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이런 편향을 줄이기 위해 AI의 미세조정 과정에 ‘인간이 개입하는 과정’을 반드시 두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물론 AI의 초기 버전이 주류인 요즘과 마찬가지로 AI를 다루는 모든 과정에서 인간의 질문(요구)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AI가 예컨대 이메일 피싱 공격처럼 아주 교묘하게 디지털 사기를 칠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AI),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는 인공지능이 ‘정렬’이 잘못되면 아주 해롭거나 악의적인 일에 쓰일 수도 있다(71 쪽). 오늘 우리의 고민은 AI의 유익한 특성이 매우 해로운 결과를 부르는 문을 열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김세윤 박사의 지적처럼 피조물인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항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인데 AI 역시 피조물인 인간이 만든 이상 예외는 될 수 없다. 이 AI를 인류가 지금부터 적절하게 <규제>하지 못하면 이 AI로 인해 인류에게 구원이 아니라 멸망이 올 수도 있다. AI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파괴적인 결과가 오는 순간, 다시 말해서 ‘초인공지능’이 탄생하는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는 거짓 신(神, 우상)이 되어 인간을 노예로 부리게 될 것이다.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할 기독교인들이 AI의 등장과 그 발전을 그저 그런 세상의 일로 여겨 함부로 등한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기독교인,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책을 꼭 정독하여 AI에 대한 생각을 미리 차분히 정리해 두면 참 좋겠다. 좋든 싫든 지금 우리는 AI와 함께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AI와 함께’ 일하는 법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AI 영역에서도 우주의 왕이자 주인이신 우리 주(主) 예수님이 왕·주인이 되셔야 하지 않겠는가? 안 그런가?

 

이광우 목사(전주열린문교회 은퇴목사)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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